천재와 광인, 그 한 장의 차이
이 그림들은 고양이에 대한 그림만으로 평생을 할애했던 루이스 웨인 (Louis wain, 1860~1939)의 작품들이다. 그는 암에 걸린 아내를 위해 키우던 고양이 피터를 그리기 시작했고, 그 뒤로 잡지, 신문사 등에 그림을 투고하며 순식간에 유명세를 탄 인물이다.
그는 다른 것은 몰라도 고양이 그림 만큼은 현재까지 거장의 소리를 들으며 미술계에 묘(猫)족적(?)을 남긴 인물이다. 그의 작품 어떤 것을 둘러봐도, 고양이의 존재가 없는 그림은 없다. 이처럼 예술적인 어떤 분야에서 한가지에만 몰두하며 작품들을 남긴 사람들을 우리는 보통 ‘천재’ 라고 부른다. 하지만 한편에서는 과도한 집착으로 인한 ‘광기’ 에서 나오는 작품들이라고 하기도 한다. 과연, 천재와 광인의 사이에는 어떠한 공간이 존재하고 있을까?
천재 : 선천적으로 타고난, 남보다 훨씬 뛰어난 재주. 또는 그런 재능을 가진 사람.
광인 : 미친 사람. ≒광자(狂者) •난인 •전광인
언제나 우리에게 냉철하고 담담하고 일반적인 답을 제공해 주시는 사전님에게 뜻을 여쭈어 보았다면, 사실 특별하게 우리가 기대하는 의미의 뜻은 찾을 수 없다. 모두가 예상하는 뜻이다. 그러나 이 두 단어가 합치면 알 수 없는 공간이 생기면서 시대를 넘나들며 회자되는 아우라를 뿜는 것이다. 참 기묘하지 않은가. 광기는 천재의 내면에 깊숙이 자리를 잡고, 천재는 그것을 요리해서 광기라는 순기름을 뺀 형상화된 작품으로 내어 놓는 것이다. 간단히 말해 광기는 천재를 거치며 소멸된다는 것. 물론 그것이 모든 시대의 예술가들에게 포함되는 얘기는 아니다.
이것은 엄연히 ‘연주곡’ 이다. 다만 음악을 만들어 내는 것은 연주자 뿐만이 아니라
주위의 모든 소리를 내는 것들에게 맡겨져 있다는 것이 다를 뿐
이것이 위에서 연주한 곡의 악보이다. 총 3 악장으로 나뉘어진 이 곡은 보시다시피 TAECT(음악 용어로 ‘침묵’을 뜻한다.) 뿐이다. 혹자는 이것에 대해 공간이 만들어내는 ‘천재’ 적인 음악이라 하며 숭배하고, 또 다른 누구는 피아노 앞에서 멍 때리기만 하면서 예술인척 하는 ‘미친’ 짓이라 한다. 어쩌면 이 연주가 진행되는 4분 33초의 공간이 천재와 광인 사이의 단서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사람들이 모두 천재와 광인 사이를 넘나들며 활동을 했고, 한 시대를 이끌어 나갔다.
그렇다면 과연 천재와 광인의 밸런스는 어떤 식으로 나오는 것일까. 여기 간단한 사례가 몇 가지 있다. 먼저 단어 자체가 주는 느낌을 가지고 스트레이트하게 한 번 분류를 해 봤다.
순수한 의미에서의 그냥 ‘천재’ 라고 한다면 이 사람만큼 확실한 사람이 있을까.
익히 알려진‘모나리자’,‘최후의 만찬’등 불후의 미술작품 뿐만 아니라
조각, 건축, 과학, 수학, 해부 등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다양한 분야에서 족적을 남긴 이 사람, 레오나르도 다빈치이다
그는 미술에서는 해부, 원근법에 대한 지대한 공헌을 했으며 새로운 도시 구성안을 설계했고, 다양한 기계적인 발명 도안을 완성하는 등 그 생애 안에 도대체 다 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많은 분야에서 소위 ‘쩌는’ 실력을 발휘하였다. 게다가 그는 모더니즘으로 넘어오면서 본격화 된 ‘천재와 광인’ 의 정신적 고뇌에서도 자유로웠다. 지금의 시점으로 보면 그 당시의 기준은 천재거나, 아니거나 였을 뿐이었으니. 말 그대로, 진정한 천재란 이런 것이라 할 수 있다.
영화 다빈치 코드의 예고 편.
허구가 상당수 있지만 다빈치라는 인물의 천재성에 베이스가 깔려있는 영화이다.
좀 그로테스크한 이미지일 뿐이라고? 그렇다면 이 앨범의 속지를 보라. 차마 여기서는 공개할 수 없을 정도의 이미지가 들어있다. 바로 예수를 극도로 저주하는 밴드 ‘Deicide’(신을 죽이는 자)의 앨범 자켓이다. 그들은 단지 ‘마를린 맨슨’ 처럼 반기독교적인 이미지를 상업화시키는 사람들이 아니다. 그들은 진정한 사타니즘이며, 예수를 죽이는 것이 소원인 자들이다.
이마에 박힌 저 역십자 낙인은 분장이 아닌 ‘진짜’ 이다.
단순히 그들을 음악적으로만 평할 수도 있겠지만, 진심인 자들은 당해 낼 수가 없다고 했던가. 이 밴드는 유일하게 기독교 집단들에게 공연 중 테러까지 당했던 인물들이다. 종교의 호불호를 떠나서 이토록 사타니즘에 빠져 예술에 심취해 있는 그들에게 ‘천재’ 라는 호칭을 붙여줄 수 있을까. 단지 그들에게는 ‘광기’ 만이 어울리며, 이 또한 그들이 바라는 바일 것이다.
Deicide : Once Upon The Cross. 대충 신을 죽이자는 가사인데,
그 그로울링한 목소리에는 진정한 지옥이 담겨있는 듯하다.
여기까지는 아주 단순한 천재와 광인 사이의 사전식 분류라 할 수 있다. 여기에서 조금 더 들어가면, 우리는 다소 복잡한 방식으로 그 차이를 다룰 수 있겠다.
왼쪽의 저 분이 화가 달리, 오른쪽의 저 분이 얼터너티브 락밴드 ‘너바나’의 리더 커트 코베인이다.
살바도르 달리, 하면 우리는 이미 학창시절 미술책에서부터 그의 그림을 보아왔다.
살바도르 달리 (1904~1989) 는 르네상스시대의 사람이 아니다. 그가 TV광고에 출연하는 걸로 놀라지는 말기를...
달리를 사람들이 주로 얘기할 때 빼먹지 않는 것이 바로 ‘광기’ 이다. (그의 광고를 보라. 스스로 미쳤다고 하고 있지 않는가) 그는 프로이트의 열렬한 추종자였으며, 자신의 아내 갈라를 신처럼 모셨다. 그의 기행 중 아주 재미있는 일화가 하나 있다. 1936년 열린 초현실주의 전람회. 달리는 그 전람회에 벤츠의 냉각장치 캡을 머리에 이고 잠수복을 입은 채 러시아산 개 두 마리를 데리고 나타났다. 그는 그 상태로 강연을 시작했고 사람들은 아무 소리도 들을 수 없었는데, 그 이유는 잠수복을 쓴 상태로 강연을 했기 때문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숨이 막힌 달리는 헬멧을 벗겨주길 애원하며 팔을 마구 휘저어댔지만, 관객들은 그의 광기에서 비롯된 또 다른 퍼포먼스니 하고 사실을 알 때까지 박수갈채를 보냈다고 한다. 이런 기행으로 인해 그의 찬반논란은 끊이지 않았지만 그가 최종적으로 시대의 예술가로 남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가 광기보다 1% 더 가지고 있었던 천재성이었다. 바로 천재와 광인의 사이가 그 1% 라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그냥 정신이 나갔다는 얘기까지 들었던 모차르트는 어떤가? 랭보는?
신들린 듯 곡을 만들어 낸 모차르트, 도덕적 지옥을 택한 랭보.
누구인지 모른다면 이미지를 클릭해 보시라. IT발전의 산물이 답을 주시리라.
그렇다면 반문하고 싶다. 그들이 달리와 다를 건 또 뭔가?
Nirvana –Smells Like Teen Spirit. 이 곡은 현대 락 음악의 새로운 시작의 상징이라 할 수 있다.
사실 노래를 잘 한다고 볼 수도 없는 커트 코베인. 그는 그러나 이 영상에서처럼,
무언가 일반 가수들과는 다른 에너지를 뿜어내고 있다.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앨범 ‘Nevermind’ 앨범 자켓.
잘 모른다고?
심슨과 레고에서 패러디 할 정도면 유명한 거다.
시애틀 출신으로, Nirvana(열반)의 리더로, 얼터너티브 그런지 락의 부흥을 이끌었으며, ‘점차 희미하게 사라지는 것보다 한 순간에 타 버리는 것이 낫다’ 는 유서를 남기고 자살한 커트 코베인. 그의 족적에 대해서는 과대포장이다, 사실이다를 놓고 아직까지도 락 팬들 사이에서 쥐락펴락하는 화제가 되고 있지만, 확실한 건 그는 1%의 그 공간을 주체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그가 천재가 아니라는 얘기는 아니다. 그는 분명히 한 시대를 풍미한 천재 뮤지션이다. 다만 최후에 이르러 그 1%의 무게를 감당하지도, 이용하지도 않고 사라졌을 뿐. 그런 의미로 버지니아 울프도, 고흐도 같은 맥락에서 사라진 것이 아닐까.
돌을 짊어지고 강가로 서서히 걸어 들어간 버지니아 울프와 자신의 귀까지 잘랐었던 고흐의 마지막 작품 ‘까마귀가 나는 보리밭’
자, 이제 처음으로 다시 돌아가 보자. 루이스 웨인은 평생을 오로지 고양이 그림에만 몸바쳐왔다.
시작에서도 봤겠지만 바로 이런, 고양이를 의인화한 귀여운 스타일의 그림들을 그렸다.
요즘 이 사람이 활동 했다면, 팬시 회사들이 쌍수를 들고 반겼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러나 이 ‘고양이 천재’ 에게는 중년에 접어들면서 큰 문제가 생겼다. 바로 예술가들의 특권(?)인 정신 질환을 앓게 된 것이다. 소위 정신분열이라는 것인데, 이러한 병을 앓고 나서부터 그의 그림세계에는 큰 변화가 나타났다. 다만 그 소재가 고양이 라는 것에는 특별한 변화는 없었다.
그의 정신병 초기 때는 고양이들이 이러한 오오라들을 점차적으로 내뿜기 시작하였다.
그러다가 점점 병세가 심해지며 이런 식으로 고양이들이 일정한 패턴으로 확산되기 시작한다.
이 모양은 마치 카페트의 그것들과 흡사한데… 아래에는 그의 정신병 말년의 그림들이 있다.
섬뜩하다 싶을 정도로 고양이와는 상관없는 그림이 되어버렸으나, 여전히 이것은 고양이 그림이다. 그는 말년을 이렇게 정신병 속에서 헤매면서도 계속 그가 사랑해 마지 않던 고양이들을 그렸다. 그가 키우는 수마리들의 고양이 품 속에서 말이다.
조사에 의하면, 일반인들이 정신병으로 고통 받는 확률은 1~5% 라고 한다. 그러나 정신병은 예술쪽으로 넘어오면 둘도 없는 친구 사이가 되는 것 같다. 문필가, 음악가의 경우 이 확률은 무려 80%에 육박하며 화가의 경우도 거의 70%에 도달하고 있다. 일반인들이 보통 매우 높을거라 생각하는 과학, 정치관련 계통은 30%를 채 넘지 못한다. (우리나라의 정치가들은 제외하자. 그들의 정신병 확률로 볼 때 그들은 정치를 ‘예술’적으로 하는 게 틀림 없으니)
이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바로 천재와 광인이라고 굳이 이 자리에서 페이지를 할애하게 해 주는 것을 뜻하는 것일 수도, 그들의 1%에 대한 극렬하고도 치열한 싸움을 말해 줄 수도 있는 것 아닐까. 아무튼, 그들의 이러한 치열한 한 장의 사이의 싸움 덕에 우리의 문화는 나날이 발전하고 있는 것 이겠지만 말이다.
아마도 그들의 내면은 이렇게 외롭고도 거대한 거인의 모습이 아닐까 싶다.
광기와 우울증 속에서 평생을 싸워왔던 고야의 그림 ‘거인’
마지막으로, 광인을 넘어선 한국의 대표적인 천재 예술가, 백남준 선생님의 ‘Electronic Moon #2’를 감상하며 예술과 천재, 그리고 광기에 대해 차분하게 고찰하는 시간을 갖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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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스포츠가 지루하면, 이것을 해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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